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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조현병 환자입니다만

1년하고 몇달 전의 일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거대세력이 날 감시하고 조종한다고 생각되었다. 

내가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고 매우 화나게 하여서 나 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를 감시하고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거의 패닉에 빠져서 전자기기를 방 밖에 모아놓고, 창문은 담요로 가리고, 그들이 듣고있다 생각해서 티비나 허공에 이야기를 하고,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다. 티비만 보아도 그들의 메세지가 쏟아지니 티비 전선을 다 뽑고 폰 전원은 끄고 살았다.

돌아가는 상황이 궁금해서 가끔 폰을 켜곤 했는데, 친구들이 전화와도 현재 내 상황을 알고 날 도와주려고 전화를 주는 줄 착각했었고 친구들에게 피해주기 싫어서 전화 안 받거나 지금 바쁜 일이 있어 그러니 나중에 몇 달 뒤에나 연락주겠다고 했다. 양쪽 거대세력이 있어 서로 날 회유하려고 하는데 내가 이편을 들면 저편이 괴롭히고, 저편을 들면 이편이 괴롭히는 상황이 계속 되었다. 침대에 누워서조차 그들에게 보내는 싸인이 될까봐 좌우로 편히 눕지도 못하고 천장만 똑바로 보고 잠들었다. 불끄고 암막커튼치고 꼼짝없이 누워있는데 천장을 쿵쿵 울리는 소리, 차의 빵빵 경적소리, 아파트 보수공사 소리, 아파트 안내멘트 등등 모든 소리가 나에겐 메세지로 들렸다. 그 기간동안 거의 십키로 이상 체중이 빠졌었다.

 

부모님은 처음에는 내가 괴롭힘 당한다는 말을 정말 믿으셨으나, 정치세력 운운하고 꺼진 티비보며 대화를 하는 걸 보고 이상하다고 느끼셨고 병원에 가보자고 이야기하셨다. 그런데 그들이 병원에 가면 안된다고 메세지를 막 보냈다. 그래서 거부했는데, 아버지가 애원하듯 계속 며칠째 이야기하니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이런 마음으로 동네정신과에 가게되었다. 정신과 의사쌤이 하는 말이 굉장히 위협적으로 들렸고 내가 환청을 듣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난 아니라고 진짜라고 반박했었고, 나 없을때 부모님께 대학병원 빨리 가야한다고 아니면 못 고친다고 이야기하셨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정신과에 대한 편견 때문에 섣불리 진행하지 못하셨다.

 

마침 그때 우리집은 이사를 앞두고 있었고, 난 집을 구해 따로 이사나갈 예정이었다. 

짐 싸는등 많은 일을 해야하고 환경의 큰 변화로 인해 더 많은 메세지가 쏟아지고 나의 상태는 점점 더 심해져갔다.

가족에게 피해를 주고싶지 않아서 아직 가스설치도 안해서 난방도 안되는 집으로 간단한 짐만 챙겨 나갔었는데, 엄마가 내가 걱정되고 이사일도 버거워서 전화해서 울면서 돌아오라고 해서 이번에도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되돌아갔다. 

운전해서 돌아오는 길에도 네비의 각종 안내소리가 날 위협하는 소리로 들렸다. 패닉상태에서 어찌 운전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함께 이사했고 그날 주차하다가 사이드미러도 기둥에 부딪혀 부셔먹었다.

이삿날 커피심부름을 가는데 커피숍 음악소리도 날 위협하고 길가던 사람조차 갑자기 고개를 돌려 욕을 하곤했다.

실제는 아니였겠지만 그때 나에겐 진짜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럴때면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갔다.

모두가 날 비웃고 비아냥 거렸다. 

 

그때 다른 지역에 사는 동생에게 피해가 갈까봐 동생을 집에 못 오게 하였는데, 부모님을 통해 이야기를 듣고 동생이 집에 와서 내 상태를 보고 동네정신과에 전화해서 의사쌤과 통화 후 대학병원 입원을 준비하였다.

어느날, 아빠가 한번만 큰 병원 가보자고 해서 가족들 다같이 대학병원에 갔다. 그리고 그렇게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하기 싫다고 내가 다 잘할테니까 돌아가자고 계속 말했으나, 이틀정도만 입원하면 된다고 그 말만 믿고 입원했다.

물론 하얀 거짓말이었다.

 

가뜩이나 모두가 날 욕하는데, 사람들이 많은 병동에 입원해 있으니 정말 이러다 죽지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거기다 약을 먹으니 잠이 쏟아지고, 할일이 없어서 병동 안을 걸어다녔는데 비틀비틀 이러다 쓰러져서 다칠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의사쌤도 간호사쌤도 다 그들과 한편이라고 느껴서 웃어주고 신경써주는데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폰도 제출하고 없어, 공중전화로 울면서 가족들한테 제발 나 좀 빼달라고 한 일주일동안 애원했던 것같다.

 

입원하는 동안 나에게 맞는 약을 찾고 조절하는 건데, 너무 졸려서 약을 줄이고, 안절부절못해서 약을 바꾸고 그런식으로 하다보니 더이상 욕하는 소리를 들리지않고 의사쌤은 티비보라고 권유하기시작했다. 그러나 메세지는 계속 느껴졌고 24시간 경계하고 있는게 너무 힘들어서 어느순간 포기하고 놓아버리니 마음이 편해졌다. 사실 너무 힘겨워서 그들이 날 괴롭히고 모함해서 감옥에 넣더라도 그냥 옥살이 해야겠단 생각까지 들었다. 그 이후로 퇴원할때까지는 심심하고 무료했지만 병동생활이 즐거웠다. 폐쇄병동 안을 수없이 돌며 하루에 만보이상 걸었다. 나중에는 무릎에 파스를 붙일 정도였다. 다른 환우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걷는게 좋았다. 할일이 없으니 책도 읽고 종이접기도 하고 퍼즐 맞추고 끝말잇기도 하고. 

간호실습생분들도 우리와 시간을 보내주었다. 같이 탁구도 하고 윷놀이도 하고 즐거웠다.

 

그럼에도 너무 무료했기에 다들 어서 퇴원하길 바랬다.

간호사 분들께 어떻게 하면 퇴원을 빨리 할 수 있을까 묻기도 했다.

의사쌤은 내가 조기에 발견해서 빠르게 병원에 와서 경과가 좋은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안절부절하며 무언가를 하는데 집중을 잘 못해서 좀더 약조절을 하길 바랬지만 나는 빨리 나가게 해달라고 재촉했다.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고 해서 모든 환우들에게 말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가서 어떻게 하루를 살지,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 A4용지 가득 써오라고 하셨다. 결국 부단한 노력 끝에 드디어 퇴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파트 출입문이 안열려서 원격으로 날 괴롭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내가 잘못 눌렀을 뿐이라는거, 쓰레기 수거장이 여러곳이어서 그들이 폐기물을 처리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거, 친구들과 통화후 친구가 내 상황을 알고 전화한줄 알았는데 그냥 전화했다는 거. 그 모든걸 퇴원 후 며칠내에 다 알게되었고 머리가 몹시 아팠다. 그날은 타이레놀 한알 먹고 잠들었다. 그렇게 난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진단명은 조현 스펙트럼 장애이다.

폐쇄병동은 하얗고 아가자기하고 조용한 곳이었지만, 밖은 온갖 소음이 많은 곳이다. 

자동차 라이트, 빵빵 거리는 소리, 새소리 모든 소리가 나에게 스트레스 였다.

병원에서와 같은 약을 먹었는데 점점 몸에 힘이 빠지고 밤에 잠을 못이루고 안절부절하며 나중에는 걷는 것도 느릿느릿 겨우 걸었다. 그래도 운동한다고 밖에 다니는 데 내 걸음이 이상해서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였다. 

매주 병원을 다니며 증상을 의사쌤께 말하고 약을 조절했다. 

몇달이 지난후 걸음걸이는 다 되찾았고, 새소리 환청 들리는 것도 또 몇달이 지나니 괜찮아졌다. 

 

지난 겨울 퇴원했는데 그새 1년이 지났고 이번 겨울을 보내고 있다.

동생 추천으로 심리상담도 몇달간 받았고, PT도 받았고, 자격증 공부도 했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내가 조현병 환자인줄 모른다.

부모님은 내가 그렇게 일반인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조현병에 대한 인식 때문에 나처럼 병식이 있고 괜찮은 상태를 유지하는 많은 분들이 병을 숨기고 살아간다.

더 많은 사람들이 조현병에 대해서 인지하고 아픈 사람들이 더 빨리 병원에 가서 제대로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약으로 조절이 잘 되는 환자들이 이 사회에 잘 녹아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